---------------차례------------------------------------------
<한국 문화사의 특수성>
1) ‘반反제국’은 ‘반反서구’가 아니라 ‘반反일본’만 을 의미했다
2) 전통을 사랑하는 이들이 진보적 ‘운동권’이 된 이상한 나라
-------------------------------------------------------------
<한국 문화사의 특수성>
우실하
서구의 시각으로 동양을 재단하고, 스스로의 문화를 비합리적‧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비서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필자는 동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동양의 문화적 문법으로 해독해야 한다는 의미의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을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은 자기 문화를 스스로 비하하는 문화적 식민지성을 우리가 넘어서야 한다는 논지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서구 중심적 시각을 해체하는 것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우리 문화사의 특수성과 연결되어 있다.
1) ‘반反제국’은 ‘반反서구’가 아니라 ‘반反일본’만 을 의미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제3 세계와는 다른 문화사적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곧, 대부분의 제3 세계 국가들은 주로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는 ‘반反서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를 모방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은 까닭에 ‘반反제국주의’는 대부분 ‘반反일본’을 의미하는 것일 뿐, ‘반反서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제 시대에 구호로 외쳐지던 수많은 반제‧반봉건이라는 표현은 대부분 반일본제국주의, 반봉건주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학혁명군의 경우에는 ‘반反서구’와 ‘반反일본’을 모두 포함하는 논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실제로 ‘반反서구’는 보다 시급한 ‘반反일본’이라는 대세에 밀려 힘을 얻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제국주의의 또 다른 축이었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은, 일반 한국인들에는 언제나 일제의 침략을 견제하는 고마운 나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1)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 위반되는 일제의 신사 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서구 선교사의 모습은 일제에 항거하거나 한국을 돕는 고마운 우방이자 친구로 여겨졌고, (2)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성경의 한글 번역은 천대받던 한글을 보급하는 근대적 계몽주의자들의 고마움으로만 기억되고 있으며, (3)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선교 기지로 설립된 각종 학교들은 근대 교육의 기초를 확립한 고마운 이웃의 자비로만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양인들의 노력과 봉사의 순기능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순기능 이면에 도사린 역기능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 읽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많은 제3 세계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해방을 맞이하면서, 그들을 지배했던 서구에 대해서 반제국주의, 반서양주의를 외치고 있을 때, 우리는 고마운(?) 미군정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초석은 미국의 가치와 척도에 따라 재단된 초석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가치 기준에 맞추어 우리의 전통 문화가 재단되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가치 기준에 맞춰서 우리의 전통 문화가 다시 한 번 재단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사의 비극을 비극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일방적인 인식은 개항기․일제 강점기․해방공간을 거처 지금까지도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최근 미국 순회 공연 중이던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장 겸 지휘자인 하성호씨가 미국 공연에서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발언이라서 신문 보도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신문자료1 : “미국이 최고 … 한국 역사, 그게 뭐냐”(「경향신문」, 2004년 3월 09일 인터넷판 22:31)
미국 순회공연 중인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단장 겸 지휘자 하성호(52)가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공연은 문화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관광공사,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공동 주최했다.
하씨는 지난 5일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미국이 최고다. 음악은 미국에서 온 거다. 미국이 한국에 음악 및 다른 것들을 전파해줘서 너무나 감사하다.”면서 “한국은 5,000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미국은 200년 짧은 역사 동안 훨씬 많은 것을 이룩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씨는 또 “오늘 관객들은 정말 박수를 잘 친다. 한국 사람들은 박수를 안친다. 한국은 반만년 역사 동안 한번도 승리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을 관람했다는 네티즌 최모씨가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사이트 게시판에 ‘불쾌했던 LA공연을 보고’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최씨는 “지휘자의 연설을 들으며 오늘이 미국 찬양의 밤인 줄 알았다.”면서 “앙코르 곡으로 ‘God Bless America’(미국 국가 - 필자)가 연주될 때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의 분노가 확산되자 하씨는 “손님 입장에서 집주인을 극진히 칭찬해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며 “우리나라가 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는 글을 사이트에 올려 더 거센 반발을 샀다. 한편 이번 공연을 주최한 한국관광공사는 지휘자 하씨를 교체키로 했다.
*신문자료2 : “5000년 역사가 뭐 어쨌다고…” (「세계일보」, 2004년 3월 9일 인터넷판 22:47분)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단장 겸 지휘자 하성호(사진)씨가 미국 순회 공연 중 한 한국 비하 발언이 네티즌 사이에서 물의를 빚으면서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하씨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진화에 나섰으나 순회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LA 공연을 관람했다는 최혜림씨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지휘자의 연설을 들으며 내내 오늘이 미국 찬양의 밤인 줄 알았다.”고 분개했다.
하씨는 공연 후반부에 부정확한 영어로 “미국이 최고다.”며 “한국은 5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Korea, 5000 years, what the hell)”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6일 샌디에이고에서 공연을 관람했다는 ‘미국시민’이란 아이디의 관객은 “계속 미국인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말이 내게 무척 큰 상처를 줬다.”며 “미국인들에게는 10달러(약 1만2000원)에 CD를 팔면서 한국에서는 25달러(약 3만원)씩 판다고 말했을 때에는 말문이 막혔다.”고 밝혔다.
네티즌의 항의가 빗발치자 하씨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는 “최근 빚어진 물의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통역 없이 저의 짧은 영어로 직접 콘서트에 와주신 청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 탓에 적절치 못한 표현을 사용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순회공연은 한국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해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 주최했으며 문광부와 관광공사 대기업 등에서 총 11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문화관광부와의 협의를 거쳐 나머지 순회일정에서 하씨를 교체키로 했다고 9일 밝혔다.
한국관광공사 최재근 부사장은 “물의를 일으킨 하씨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올레그 부지휘자로 교체키로 했다.”면서 “부지휘자가 미국 비자가 없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공연은 하씨가 지휘하고 이후에는 올레그가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하씨의 발언 내용이 전해지자 분노한 네티즌들이 항의의 글을 올리면서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홈페이지가 다운되었다고 한다.(YTN뉴스 2004년 3월 9일 19:46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홈페이지(http://www.kcaf.or.kr)에 올려진 서울팝스오케스트라를 소개한 글을 통해서 보면 하성호는, (1) 지난 1988년 9월 14일 창단 연주를 한 이 단체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목이라는 기치 아래 창단되었으며, (2) 1991년 4월 22일에는 한국심포니오케스트라도 창단했고, (3) “미래의 음악계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를 양성한다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국심포니 리틀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골수 음악인이기도 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신영란, “문화예술탐방 / 서울팝스오케스트라: 21세기의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사람들” 참조)
필자는 하성호의 발언이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우발적으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왜곡된 인식을 길러온 것이 바로 우리의 뒤틀린 문화사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우리의 뒤틀린 문화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직도 피가 솟구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서구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동경심을 지니고 있다. 일본의 대중 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온통 법석을 떨면서도, 정작 미국의 대중 문화는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온다. 그 와중에 젊은이들은 서구 문화에 길들여지고, 서구의 잣대로 우리의 문화를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스트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2. 전통을 사랑하는 이들이 진보적 ‘운동권’이 된 이상한 나라
이런 우리 문화사의 배경을 이해하면 또 다른 우리 문화사의 특수성 하나를 이해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신의 전통 문화를 옹호하고 지키려는 것은 가장 보수적인 집단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전통 문화를 지키고 보급하려는 단체들이 모두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고 소위 ‘운동권’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최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 민음협(민족음악인협의회) 등 각종 민족예술가단체나 그 산하 단체인 소위 ‘운동권’ 단체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각종 예술단체의 장을 독식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기사들이 계속해서 보인다. 문예진흥기금도 과거에 소위 운동권으로 분류되었던 이들 단체들에 편파적으로 지원되고 있다고 난리들이다.
전통 문화를 지키고 보급하려는 단체가 진보적 운동권이 되어 있는 이런 해괴한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그동안 우리문화의 주류세력들이 서구를 추종하던 오리엔탈리스트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니, 자신의 전통 문화를 지키고 보급하려는 이들이 오히려 사회의 기틀을 흔드는 진보적인 위험세력처럼 보이는 것이다.
우리 문화사의 비극은 서구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비하해 온 문화적 마녀 사냥에 있었다. 근대화를 가로막는 모든 것은 미신이나 봉건적 유산으로 낙인찍혔고, 그렇게 낙인찍힌 것들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과 함께 오랜 역사를 함께 했던 전통 문화․민족 문화였다. 이것은 언제나 봉건적 유산(?)과 미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근대화=서구화=세계화를 위해서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문화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1) 서구 특히 미국 문화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하여 오리엔탈리스트들을 양산해 왔고, (2) 이런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문화의 주류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에, (3) 전통 문화를 지키고 보급하려는 이들이 오히려 진보적인 세력이 되어버린 ‘뒤틀린 현실’을 맞이한 것이다.(끝). 2004.4.13일.
|
|
